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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김재규공무원학원 생생한 합격스토리

원장님! 저 뺀질이 입니다.

작성일자 : 2017-02-22

2008년 6월 광주 김재규경찰학원에서 처음으로 동영상이 아닌 실 강의를 들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그때는 '그래 1년 정도만 열심히 공부하면 합격할거야' 

자만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경쟁자였던 친구의 책상에는 '나의 수능점수 1점이 나의 남편을 결정 한다' 라는 문구가 붙은 뒤로 쉬는 시간에도 의자에 본드를 발라둔 마냥 일어나질 않았습니다. 

문구가 웃기다 놀렸지만 당장 경쟁자인 녀석이 공부에 열중하니 덩달아 저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의자에 앉아있는 연습은 오랫동안 해왔기에 괜찮았습니다. 

나름 합격을 위한 전쟁에서 공부도 전략과 전술을 필요로 함을 배웠고 

각 과목들은 내 무기라서 전쟁에 나가 싸워 승리하기 위해 

활, 창, 방패, 검, 갑옷 등 녹슬지 않도록 매일 점검하고 갈고 닦고 살피고 견고하게 

손보듯이 한 과목이라도 소홀하지 않도록 골고루 공부하고 아무리 어렵게 출제 되더라도 내 비장의 무기가 되는 핵심과목은 한과목이상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하고 처음도 기본서요 끝도 기본서로 반복 또 반복등 나만의 학습방법도 가지고 있어서 자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만심으로 생각했던 수험기간 1년을 5년이 된 사연- 어느 뺀질이의 고백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처음에는 열정으로 자신감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의 호기심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침 파편을 빗발치거나 직격탄 맞는 바로 앞은 빼고 두 번째 세 번째 사정거리 안 확보를 위해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에는 영어 어휘를 외우면서 중1때부터 미국교환교수님과 주말마다 회화도하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영어는 문제없겠지 뭐 전략과목 중 하나하면 되겠다 생각하고 있었더니 생전 알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어휘들, 수두룩한 유사어휘들, 절 애먹이는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영어 시험 보면 어휘에서 대부분 틀립니다. 참고로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어휘 무식하게 외웠던 남동생은 유사어휘 찾는 문제 나오면 항상 만점입니다. 

자만심의 대가임을 알았습니다. 적당히 대충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무기를 손안에 익숙히 다루려면 만져보고 갖고 놀아야 하건만 다섯 과목 중 유독 싫은 과목: 형법 이 병기는 취급하기 싫은 무기로써 

교수님의 말씀은 분명 한국말이 맞는 것 같은데 도통 알아들을 수 없고 

병법인 기본서는 분명 한글 맞는데 해석불가로 

다루지 못하면 전쟁에서 분명 이기지 못하는데 

알면서도 가까이 하기 싫은 적당히 싫은 과목으로 낙인찍었습니다. 

심지어 형법교수님도 미웠습니다. 

형법병기도 자길 싫어하는걸 아니까 당연히 점수를 안주려 제 손에서 벗어나려 하더군요. 모의고사 치르면 형법은 평균 깎아먹는 미운놈이었습니다. 

이 또한 수험기간을 늘리는 자만심의 대가였습니다. 

안되면 되게 하고 싫으면 피할게 아니라 정면으로 파고들어 승부를 볼 것이지, 모른데도 질문도 않고 넌 어려워 매도하여 책 덮어버리고 편식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고작 판례문제만 깨작깨작, 초반 합격전쟁에서 폐한 주요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형법무기는 녹이 슬어가고 있었으니까요. 정신을 차렸을때는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모의고사든 실전이든 전쟁에서 

자꾸 폐한 뒤로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싶어 모든 병기들 다시 점검했습니다. 특히 녹슨 형법병기 앞에 놓아두고 사정했습니다. 너 싫어해서, 어렵다고 쳐다보지 않고 무시해서 미안하다고 나 좀 도와주라고. 나 꼭 합격해야겠으니 협조 좀 해달라 부탁했습니다. 

 

어렵다. 어렵다 하면 쉬운 문제도 정말 어렵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쉽다. 쉽다 하면 정말 쉬어집니다. 정말 제 솔직한 경험입니다. 

다시 기본서부터, 원리부터 차근차근 짚어나갔습니다. 토탈 한 문제를 풀더라도 객관식 한문제를 풀더라도 기본서 하나하나 찾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문제, 지문 하나하나 기본서 찾다보니 시간은 처음에 오래 걸렸습니다. 그나마 외우다시피 했던 판례도 형법총론이 기본이 되어 바탕이 되지 않고는 안됨을 알았습니다. 원리를 알면, 이해가 되면 응용은, 암기는 좀 더 수월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자꾸 반복하고 모르면 묻고 하다 보니 

아! 이거구나! 형법이 이렇게 재미있었구나! 왜 이제껏 몰랐지? 

물론 어렵다 여긴 형법병기를 능숙하게 잘 다루는 교수님을 존경은 하였으나 미워했던 점 부끄러웠고 교수님이 예뻐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과목들도 마찬가지로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잘 다뤄 손에 익은 병기는 좀 더 기름칠해주고 (이 녀석들도 되었다 싶어 손에 놔버리면 삐져요) 

익숙지 못하다 싶은 병기는 기본기를 더욱 다졌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한 하루 24시간 어떻게 하면 좀더 효율적으로 이용할까 궁리하여 찾아보니 나한테 맞는 최적의 시간은 새벽임을 알았습니다. 

고요한 새벽에 하는 30분 공부는 제게 낮이든 밤이든 5시간공부 하는 것 보다 집중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밥도 혼자가 아닌 어휘를 데리고 갔습니다. 

어휘야 나랑 밥먹자! 같이 먹다보니 어휘라는 놈이 어느새 눈에 익어지기 시작하면 영어어휘문제에서 반가운 놈이 먼저 나 여기 있다고 손을 치켜들어 아는체 해줍니다. 확실히 자주 만나야 반갑다고 더 꼬리를 쳐요^^ 

자투리 시간활용이 관건임을! 지혜롭게 시간을 이용하지 못해 수험기간이 길어진 주요원인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반성해봅니다. 

공부 방법 보다는 수험기간을 5년으로 만든 장수의 길 - 자만심의 피크는 

원장님의 가르침에 제대로 따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앞 언급대로 2008년 6월에 본격적으로 강의 듣고 공부 시작하여 2009년 2월부터 서울 심화반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으로 들어간 심화반, 20대 후반인 제 나이 위로도 꽤 있었고 아래도 꽤 있었는데 그때는 심화반 교실이 크고 꽉 찼으니 약 50명정도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마냥 신기했고 모두들 저보다 한참이나 숙련된 과목들 병기들을 뽐내고 있어서 스터디때는 기죽어 있었습니다. 잘하는 고수들 사이에서 조무래기는 얻을게 많은법, 배울게 참 많아 좋았습니다. 그 해는 그전과 다르게 1차 2차 유독 뽑는 인원이 적었습니다. 1,2차 전국적으로 여경 각 40명씩 서울은 1차,2차 각각 5명 제 수험기간 중 가장 적은 인원을 뽑았던 해였습니다. 원래 무식하면 용감하듯 초짜니까 5명안에 내가 들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하면 되지. 생각했습니다. 4월 11일경 1차 시험이 있었고 그 전과 다르게 시험이 엄청 쉽게 출제되었다고 하더군요. 

저도 가채점결과 영어는 만점이고 나머지 과목들도 잘보았다 싶어 내심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심 기대가 아니라 엄청 필기 발표날을 기대했습니다. 객관식이니까 누가 합격할지 아무도 모른다. 라는 말 숱하게 듣고 뚜껑열어봐야 한다. 라는 말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결과는 떨어지고 낙담도 했으나 7월 25일 2차 시험이 얼마 안남아 있어 또 열심히 나름 한다고 했습니다. 서울 여경 5명 뽑는 2차 시험 치르는 도중에 또 떨어지겠다. 시험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시험을 보고 난 후 이길은 내길이 아닌가? 

이미 1년이라는 시간을 설정해 둔 자만을 부렸기에 제 덫에 걸려 그에 합당한 선택을 필요로 했습니다. 공부 시작하게 된 동기와 목표가 원장님 덕분에 비롯되었는데 감사는 커녕 포기하겠다. 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원장님께서 후회 안되겠니? 워낙 강경하게 후회 안할것 같습니다. 만약 후회해도 제 몫입니다. 

원장님: 나중 두고봐라! 네 말대로 되나!라는 표정으로 그래라 하셨습니다. 

 

그 이후 또 다시 시작된 직장생활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눈치9단이라 자만했던 

저이지만 1년정도 공부만 해서인지 사회 감각도 떨어져있고 비전 없는 직장생활 힘들기만 했습니다. 

경찰이 된다면 이렇게 살고 싶다 품었던 청사진도 있었는데... 

못하는거랑 안하는거랑 차이는 확실합니다. 

몇 달이 지나 다시는 공부안한다고 박스채로 빈방에 쌓아둔 책들 

어느새 책장에 하나씩 옮겨놓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퇴근후 돌아오면 책을 펼쳐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 하나도 없음을 알고 있지만 

이왕 힘들 거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힘들자. 라는 생각이 굳어지고 나니 

나 경찰 포기 못해! 아니 안 해! 2010년 1차 3월에는 전 년보다 많은 인원을 뽑았습니다. 일 끝나면 바로 집으로 달려와 책상에 앉았습니다.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말은 본인이 안들어 놓고 괜히 원장님께 좀 더 강하게 붙잡아 주셨더라면 좋았을텐데.... 

살짝 원망도 서렸습니다.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꼭 경험해보고 뒤늦은 깨달음 없이는 말 지지리도 안 듣는 뺀질이임을 원장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직장생활도 수험공부도 두가지 일을 병존 하려면 고도의 정신력과 인내력, 체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합니다. 공 과 사는 분명하자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어서 업무는 확실히 임했지만 업무외에 나머지 시간은 공부집중 할 수 있다 하여도 체력한계가 자못 컸습니다. 

몸이 망가지거나 둘다 놓칠 수 있는 일이기에 일하면서 공부하는 수험생들 전 존경합니다. 

직장생활 중에도 간간히 전화안부 드릴 때마다 공부 쉬지 않고 하라고 말씀 해 주신 원장님께서 직장도 그만두고 2010년 1차 역시 떨어지고 전화 드렸더니 후회되지? 학원으로 나와서 공부해. 먼저 말씀 해 주셔셔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릅니다. 

 

이미 한번 쓰라린 후회를 맞보았기에 2010년 4월부터 9월에 있을 시험을 위해 나름 또 최선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또 떨어졌습니다. 

공부만 하고 있기에 나이도 많고 모아 둔 돈도 바닥이 나고 지원했던 가족도 계속된 불합격에 포기 하라 종용하고 또 삶의 현장으로 나가야했습니다. 

원장님께 또 찾아갔습니다. 저 일하면서 공부해야겠습니다. 

꼭 그래야 하니? 내가 도와주마! 계속 밀어부쳐라. 내년엔 반드시 된다. 

아니요, 이제까지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제 힘으로 해보겠습니다. 

무슨 배짱이고 자존심인지 늘 원장님 말씀 거역하는 저라서 더 염치없고 죄송스러웠습니다. 

 

경찰관이 꼭 되겠다는 생각, 떨어질수록 간절하게 품었습니다. 

공부하면서 일 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한번 혹독한 직장경험을 했기에 

공부를 하기 위한 일을 구하자 생각하여 사투리억양을 가지고 있는 제가 

저녁6시 칼 퇴근과 주5일제가 철칙인 주로 고객 응대하는 전화상담사로 일을 했습니다. 

아침9시부터 시작된 업무로 다양한 고객들의 불만과 요청사항을 해결하고 정작 오후 6시가 되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막말 고객을 아침에 통화 하면 하루가 휘청거릴 정도로 피곤했습니다. 

반면 대면이 아닌 전화이기에 사람을 상대하고 민원을 해결하다보니 어렵지만 배울점이 

얼마나 많은지 감사했습니다. 

목소리와 톤 ,억양만으로 사람의 얼굴표정이 그려지고 인격이 보인다하면 너무 과장표현이다 할지 모르나 분명 제가 겪은 경험들은 경찰생활 하는데 저의 귀중한 재산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일을 하면서 내 첫 번째 경쟁자는 내 자신이며 두 번째는 지금 이시간 하루종일 공부에 임하고 있는 학원생들이다 잊지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나는 일하면서 하는 공부, 절대 포기 못하는 공부, 남들 열 시간 공부할 때 난 고도로 집중해서 한 시간에 하도록 하자. 새벽시간을 노렸습니다. 제가 가장 집중 잘되는 시간은 새벽 3시 휴무인 주말 빼고 항상 그 시간에 일어나 공부했습니다. 대신 일 끝나고 집에 오면 6시40분 저녁 먹고 책보다 9시에는 무조건 잤습니다. 오며가며 지하철 안에서 다달이 1회분씩 뜯어서 풀어보고 저녁 집에 가면 기본서 찾아보고 나름 감사했습니다. 직장에서도 내 일만 똑바로 처리하면 눈치 볼 일 없어서 휴식시간, 점심시간 공부할수 있었고 제 확고한 꿈에 응원을 아끼지 않는 직장동료들에게도 늘 감사했습니다. 저는 분명 행운아였습니다.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었지만 늘 아쉬운 점은 시간은 한정되어 공부량에 목말랐습니다. 

시간이 많다고 공부 잘하는게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경쟁에 마음은 

조급했습니다. 2011년 1차 서울여경 또 다시 컷에서 근소한 차로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원장님께 자만을 떨고 나왔기에 반드시 합격해야하고 

합격해야 뵐 면목이 있을텐데... 

정말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뭐가 부족 한거야? (이생각을 했다는 것은 아직 멀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부족한게 무엇인지, 항아리의 물이 넘치도록 흘러 넘쳐 좔 좔 흐르는 겸손을 아직 못 깨달았습니다. 몇 달동안 목표를 두고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는데 좌절과 큰 실망이 온 몸을 아프게 했습니다. 지독한 몸살감기로 목소리자체가 안나와 직장도 그만두고 3월 내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정도로 마른기침으로 고생했습니다. 제 수험기간 가장 외로웠던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이겨내고 다시 공부를 시작할지 말지. 오랜 수험기간 자괴감도 깊었습니다. 나도 공부 좀 한다 생각했는데 난 공부하는 머리가 아닌가? 

마음의 병이라 그런지 쉬 회복이 안되어 자꾸 부정적인 생각,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도저히 이대로 주저앉고 있다가는 안될것 같기에 4월 말 5개월동안 전화 한통 없다가 느닷없이 원장님께 전화드렸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원장님은 늘 깨닫게 될 때까지 기다려주셨던 것 같습니다. 고집과 아집과 자만으로 똘똘 뭉쳐있는 저라서, 미련한 자는 꼭 경험해봐야 뜨거운 불임을 알듯 제가 그러했습니다. 

항상 제게 해주신 말씀 보이지 않는 0.1%가 결정적 순간에 99.9%를 잡아먹는다고. 

넌 아직 멀었다 말씀하시면 꼭 반발심이 생겼습니다. 원장님을 존경하고 가장 좋아하면서도 가장 말 안 듣는 제자였습니다. 

 

갑자기 증강된 채용인원 8월 25일 시험- 완전한 기회다, 정말 대박이다. 

이번에는 꼭 들어가자.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원장님 말씀대로 아직 정신을 못차린점이 있습니다. 혼자 공부하면 가장 취약점, 아무리 의지강한 동영상강의 수험생이라도 새로운 법 개정내용이나 기타 변경된 내용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원을 이용하면 바로 캐취할 수 있는 점도 혼자만의 방식으로 좁은 시야로 공부하기에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임을 또 몸소 깨달았습니다. 

역시 8월시험 또 떨어졌습니다. 당연 인원을 많이 뽑기에 될지 알아지요. 

도전! 9번째였습니다. 

너 아직 정신 못차렸어! 늘 제게 하셨던 원장님 말씀이 맞구나! 나 혼자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이제는 너 학원 나오지 마! 무슨 말씀을 하신다 할지라도 찾아가 따르며 열심히 공부해 꼭 합격해야겠다.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 제발 너 합격 좀 보고싶다. 내 말 믿고 따라봐. 잘 따르다가 꼭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 

더 이상 뒤로 갈 곳도 없었습니다. 2011년 10월 학원에 다시나와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강의를 다시 듣고 다시 한발 한발 시작했습니다. 

말은 못하지만 수업시간 원장님 하지 말라는 것 중 몇가지 해놓고 원장님께 나중 들켜 더 배신감 느끼게 만든 당사자입니다. 

애초에 말 안들으면 확실히 안듣던가 듣는 듯 하면서 뒤로 딴짓하는 못된 지지리도 뺀질이입니다. 

이것이 제 수험기간을 길게 했던 절대 원인이었습니다. 

이제는 무조건 원장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기본서 반복 또 반복, 죽기아니면 살기로 공부했습니다. 

12월 다시 심화반 들어가고 열심히 한다했는데도 만족할 만한 성적이 안나와 불안했습니다. 

 

2012년 1차 시험: 

디데이 37일 남겨두고 이번 또 시험 떨어지면 어떡하지? 극도의 불안과 예민함이 가장 극을 달렸던 시기였습니다. 

원장님을 또 한번 크게 실망시켰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장님 저 포기하겠습니다. 

디데이 37일 남겨두고 공부 안 할거라고, 이제 못하겠노라고 경찰 돼서 뭐하냐고? 2009년 2차시험때 그만둔다 여긴 이후로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는 생각 않고 있었는데 불합격이, 또 떨어질까봐 두려워서 도망칠 궁리부터 했습니다. 

원장님을 뵌지 오랜시간 제게 화내시기도 하고 아주 가끔 인색한 칭찬 당근도 주시지만 물론 욕은 무지 많이 얻어먹었지만 저 때문에 우신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한참이나 말이 없이 앉아계셨습니다. 그 때 흘리신 눈물이 제게 커다란 대못이 되어 가슴에 박히고 머리를 쳤습니다. 

딱 한마디 : 이번 시험만 최선을 다해 바라! 그 이후는 나중 얘기하자. 

원장님은 제게 아버지입니다. 필기 발표날이나 최종 발표날은 혹 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에게 상처가 될까 원장님실에 감금 당하다시피 자진 모습을 감춰 드러내지 않음을 숱하게 보고 알면서도 말로는 원장님을 존경한다 감사한다 하면서 하는 행동은 한번도.. ... 

전 진정 뺀질이였습니다. 

 

그때부터입니다. 그래 모든 것 이번 시험에 다 쏟아내자. 나 할것 다 해보자. 그런데도 떨어진다면 경찰은 내게 아니다. 이제는 미련도 후회도 훌훌, 벗어버리도록 정말 미쳐보자. 

혹 만에 하나 떨어지면 책도 다 버리고 가자. 

마지막 열 번째 도전 디데이 37일 원장님의 눈물이 만든 결심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