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김재규공무원학원 생생한 합격스토리
수기를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어요.
그래서 수기를 일단 적고, 6개 필수항목을 하단에 따로 적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2015년 1차 순경 공개경쟁채용시험에서 충남지방경찰청에 일반남경으로 합격한 김진석입니다.
처음에는 언제 합격하나 싶었는데, 저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군요. 실감이 안 나네요.
부족한 글 실력이나마, 제 글을 읽는 수험생 분들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써봅니다.
*경찰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뭔가 막연했다.
전 기본 베이스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이과 출신이었으며, 대학 전공은 생명공학이었습니다.
영어는 입대 전 토익공부를 했던 게 전부였으며, 전역 후에는 제 부전공인 철학과 수업에 빠져 공무원시험과 관련된 어떠한 공부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다 2013년 2월에 대학을 수료하고, 제 전공인 생명공학과 관련된 농업직 공무원을 준비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이 제 길이 맞는지 의문이 있었죠. 정말 원해서 하는 것일까, 제가 잘 할 수 있을까, 십년 뒤 내 모습은 어떨까 생각하면 앞이 깜깜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도로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취객 두 분을 부축하시는 경관님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듬직하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 길로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며, 2년여의 시간을 거쳐 합격수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무식하게 공부하다.
저는 처음부터 김재규경찰학원을 다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에 가까운 다른 경찰학원을 다녔었죠. 원장님, 실장님, 다른 강사분들도 좋으셨던 분들이었지만, 2개월 순환과정에 10번 이상 주말 보강을 할 정도로 잦은 보강 일정과, 저녁 수업이 늦게 끝나면 저녁 먹을 새도 없이 바로 10시 반까지 수업하던 빡빡한 일정에 지쳐 가며, 제 공부할 시간도 빼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다행히 실용글쓰기 시험과는 보강이 겹치지 않아, 자격증 5점을 모두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 한 달 전에 종합반을 정지하고, 드디어 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2순환이 약간 안 된 상태였는데, 저는 어떻게든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발버둥치기보단 기본에 충실하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공부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지만, 하기 힘든 방법이었습니다. 지금 하라면 못합니다. 아무 베이스도 없다 보니, 이해가 될 때까지 책을 베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형법과 형사소송법은 기본서를 2~3회 베껴나가다 보니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고 점수가 오르기 시작했지만, 경찰학은 부족한 제 머리로는 베껴나가도 윤곽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개월여만의 첫 번째 시험, 합격선보다 10문제 정도 부족한 점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학원을 옮겼더니, 점수가 올랐으며, 조그만 실력으로 자만하다.
그렇게 2013년 1차 시험 전까진 다른 학원을 다니다, 두 가지 이유로 김재규경찰학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경찰학을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어서였고, 다른 하나는 강사진이 대폭 교체되었었기 때문입니다. 강사진이 자주 바뀌는 편이였기 때문에, 어차피 다시 배워야 한다면 ‘원조’에게서 수강 받는 게 더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제 판단은 적중했습니다. 처음 1~2순환 때에는 50점대에 머무르던 경찰학 과목이, 어느 순간부터 제 전략과목이 된 겁니다. 그래서 적어도 법 쪽에서는 합격선의 점수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원장님 수업을 들으니 정리가 되기 시작했고, 모르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질문하며 이해가 될 때까지 반복했습니다. 특히 법전이 중요한데, 경찰학이 되었든 다른 법과목이 되었든, 법전을 옆에 펴 두고 공부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엄청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험이 한 달 정도 남았다면, 문제풀이를 시작하셔야 합니다. 저는 하루에 모의고사를 2회분정도를 풀면서, 오답노트를 만들었습니다.
틀린 부분은 바로바로 기본서를 통해 보충했으며, 암기가 되지 않은 부분은 포스트잇에 따로 적어 독서실 한 켠에 붙여두었습니다.
이 때 약간 자만했었습니다. 점수는 계속 오르고 있었고, 모의고사나마 작년 합격선에 근접한 점수가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학원을 몇 년씩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벌써 모의고사 성적표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으니까요.
*수험생활 최대의 슬럼프, 방황, 그리고 첫 필기합격
이 글을 쓰기에 앞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변수를 만들지 말라는 겁니다.
수험생활은 무미건조합니다. 그래서 매우 지루합니다. 슬럼프가 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자극제를 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자극제가 수험생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범위를 넘어선다면, 수험생이 극복하기 힘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저도 이 부메랑에 의해 수험생활을 포기할 뻔 했습니다.
수험생활에 있어 엄청난 고비가 있었습니다. 작년 2월 말경, 엄청난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하나는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갔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제 잘못으로 인해 경찰이 되지 못했을 뻔 한 일이었습니다.
비록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저는 수입이 없던 수험생이었고 친구는 이미 사회에서 인정받는 언어치료사였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예비신랑과 예비신부. 예비신랑의 자리에는 세상의 모든 행복을 가진 듯한 제 친구가 있었고,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 줘야 하지만, 가슴 속에서는 제 스스로가 초라해져가는 감정이 응어리져갔습니다.
식사 비용을 줄여가며 축의금을 마련했었던 일이나, 저 친구는 이미 사회의 구성원인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들은 그대로 제 수험생활의 첫 번째 슬럼프가 되었습니다.
학원가에서는 모두가 수험생이지만, 사회로 조금만 나가면 별세계가 펼쳐집니다.
궁극적으로 수험생활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좋든 안좋든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확률이 엄청나게 높기 때문에 이런 자리는 되도록 피하셨으면 합니다.
다른 하나는 저에게 있어 엄청난 직격탄이었습니다. 평소대로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가던 도중, 서울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스팸 전화인줄 알고 몇 번 무시했지만, 같은 번호로 계속 찍히길래 받아봤습니다.
“김xx 되시죠? 여긴 서울 xx경찰서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xxxx(파일공유 사이트)에 소설 공유하신 적 있으시죠? 고소가 들어와서요.”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저작권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저 같은 경우는 죄가 되지 않을 줄 알았거든요.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무료한 군대생활을 보내던 도중, 판타지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휴가 때마다 판타지 소설을 들여왔습니다. 물론 정가로는 사기 힘드니 중고서점이나 헌책방 등을 이용했었죠.
그렇게 책을 모아가며 전역할 날 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총기사고가 터졌습니다.
자살 미수 사건이었는데, 당시 연대장님께서 자살 기도자와 대화한 결과, 힘든 GOP근무에서 틈틈이 책을 읽는 병사가, 현실과 판타지 세계를 구분하지 못해 총을 쏜 것으로 생각하셨나 봅니다.
이후 연대 본부에서 공문이 내려와, 한권씩 모아뒀었던 책들을 모조리 압수해 갔습니다. 저는 제 책에 대한 권리를 청구하지도 못한 채, 눈 뜨고 모든 책을 압수당했었습니다.
전역 후 그 책들을 보고 싶어서, P2P 방식으로 파일을 공유하는 사이트에서 그 책들을 볼 때마다 다운받았었습니다. 문제는 이 파일들이, 받자마자 다른 사람들도 제 컴퓨터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쓴 소설이 담긴 파일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작가분께서는 저를 고소하셨으며, 저는 정말로 진지하게 꿨었던 꿈을 포기해야 하냐는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원장님과 상담해 보니, 일단 합의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돈이었는데, 시간을 끄니 합의금이 낮아지긴 했었지만 그래도 저에게 있어 큰돈이었으며, 결국 해결하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전화가 온 직후, 시험을 볼 때까지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인천에 시험 보러 올라가는 버스에서 사건이 종결되었다는 통지를 받았을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컷에서 2~3점정도 부족한 점수로 필기에서 불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제 본격적인 슬럼프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원에서는 가방만 놔두고 PC방에 가거나, 아예 학원을 빠지는 일도 많았습니다. 제 정독실 자리에는 먼지가 쌓여가기 시작했으며, 정말 백수 같은 삶을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공부를 하려 해도 머릿속에서 ‘저작권법위반 공소권 없음’이라는, 제 신상명세서에 낙인처럼 새겨진 기록에 의해 배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해서 뭐하냐.’ ‘배제당하지 않을까?’ ‘지금 공부해도 나중에 좌절한다면, 지금 공부한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저에 대해 변론하자면, 그 때의 방황은 꿈이 좌절되었다고 착각한 상태에서 빠진 방황 같은 거였습니다.
마침 디아블로라는 게임의 확장팩이 나왔었는데, 전 세계 랭킹 2백위를 달성할 정도로 게임에 미쳐 살았었습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돌렸으니까요. 제 친구들은 하루하루 높아지는 제 레벨과 장비들을 보고 기겁했습니다. 너 수험생 맞냐고 이러면서요 ^^
그러다 6월 초쯤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우연히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 반사적으로 컴퓨터를 켰지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제 머리를 지배한 겁니다.
그래. 한번 최선을 다해보자. 한번만 진짜 죽을 듯이 해 보고, 안되면 정말 포기하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원장님께서 항상 강조하신 겸손함의 의미가 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실력이 있다고 자만하고 있던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특히 합격자가 보기엔 똑같은 수험생이고, 경찰이 아닌데,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다고 해서 특출난 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시험까지 100일이 약간 안 남았지만, 정신을 차렸기에 어떻게든 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날부로 정독실을 연장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만 게임으로 피폐해진 정신이 돌아오기에는 시간이 어느정도 걸리더군요.
하지만 전 해냈습니다.
공부를 시작한지 1년 4개월여 만인 2014년 8월 말에 실시된 2차 시험에서 필기합격을 한 것이죠.
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서류는 왜 이렇게 뗄 게 많고, 운동은 이렇게 어려운지.
평소에 운동 좀 해 둘걸......., 운동......., 운동.......,
2014년 12월 12일. 당신의 수험번호는 없습니다. 다음 시험은 15년 2월 14일에 있습니다. 공부하세요.
네. 체력에서 저득점을 해서, 결국 2014년 2차 시험의 최종합격자란에는 제 수험번호가 없었습니다.
체력측정에서 워낙 저득점을 얻었기에, 낙방을 예상했었지만, 막상 닥쳐 보니 그 충격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진짜 제가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그대로 수험생활을 그만뒀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기록도 있었으니까요.
그런 와중에 제게 손 내밀어 준 것은, 대학 시절부터 정말 친했던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붙었냐고 물어보더니, 떨어졌다고 하니까 아무 말 없이 그냥 학원에나 나오라고 하더라구요.
이 친구도 소수점 차이로 필기 불합격했었는데, 자신이 탈락의 충격에 사로잡혀 처음에는 학원에 나오기도 많이 힘들었다 하면서, 저만큼은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런 과정을 겪지 말라고. 처음 나오는 게 힘들지 이후에는 괜찮다고 하면서요.
저는 친구의 말을 듣고, 결과가 나온 2014년 12월 12일에 당장 정독실과 헬스장을 등록했습니다.
2015년 1차의 한 자리를 무조건 차지하겠다는 절박함까지 갖추어서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 친구는 저보다 운동을 훨씬 잘 했었는데, 저를 엄청나게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헬스장을 그동안 꾸준히 다니기는 했었습니다만, 제대로 운동하진 않았었습니다. 힘들면 무게와 횟수를 줄이기 일쑤였으니까요. 예전에는 도망쳤지만, 저는 그 친구가 시키는 것 이상으로 운동을 했습니다.
저희는 3분할 운동법으로 운동했습니다.
다리와 어깨, 등과 이두, 가슴과 삼두를 한 묶음으로 묶고 운동했었는데, 처음엔 가볍게 시작해서 한계치까지 5킬로그램에서 10킬로그램씩 무게를 올린 뒤,
더 이상 못들겠다 싶을 때 다시 무게를 조금씩 빼면서 처음의 무게로 되돌아오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처음 운동을 했을 때는 근육통으로 인해 온전히 걸어다니지도 못했으며, 계단을 오를 때마다 영원히 고통 받았습니다.